"...나...참...."
지금 제 앞에서 온통 상기된 얼굴로 훌쩍이는 브라이언을 보며 윤석은 난감한 듯, 또는 우스운 듯 그렇게 실소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윤석의 비웃는듯한 반응에 연신 훌쩍이면서도 울컥 화가 나는 브라이언이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저질러온 한심한 반응들이 머릿속을 뱅뱅 돌아 따지기 보다는 최대한 빨리 울음을 그치는 쪽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흐...극..."
그렇다고 마음먹은 대로 멈춰지지 않는 울음이었기에 억지로 다문 입술 사이로 연약한 흐느낌이 새어 나갈 때마다 여전히 저를 빤히 바라보는 윤석의 시선을 피해 눈을 돌리는 브라이언이었다.
"야... 그만 울어라... 내가 너 죽인 댔냐?"
"이건 우는 게게 아니라..."
"우는 게 아니면? 뭐? 알레르기냐? 이젠 하다 하다 바이크 알레르기까지 생겼어?"
"너어.....씨...."
그렇잖아도 한식에 익숙하지 않는데다 거기에 이것저것 알레르기까지 있어 말은 안 해도 은근히 신경 쓰고 있는 브라이언인데 저렇게 콕 찝어서 얄미운 소리만 하는 윤석이다.
알레르기가 있는 게 문제 될 건 없었지만 한두 개가 아닌데다 윤석에게서 계집애처럼 까다롭기는, 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일부러 더 티내지않으려고 노력했었는데 그런 노력을 저렇게 말 한마디로 수포로 만들어 버린다.
알레르기는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숨겨야 할 것도, 그리고 놀림을 당해야 할 것도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숙소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생각만 할 뿐 그 생각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브라이언이었다.
말해봐야 싸움으로 번질 뿐이란 걸 이미 너무 많은 경험으로 알아 버렸기 때문이고, 또 브라이언이 적당한 선에서 물러설것을 잘 알고있는 윤석이었기에 이제 두 사람에겐 소모적인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거야 표면적인 것이고 마음까지 그런것은 아니기에 괜히 억울한 마음에 한국말이 아니라 영어로 한다면 말싸움에 지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보지만 왠지 윤석과 싸운다면 영어로 싸워도 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침울해 지는 브라이언이다.
그렇게 혼자서 훌쩍거리다 억울한 듯 눈섶을 꿀렁거리다 이내는 포기한듯 한숨을 포옥 내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윤석이 기대어있던 바이크에서 떨어져 헬맷안에 넣어 두었던 손수건을 내민다.
"어?"
제 앞에 내밀어지는 무늬 하나 없이 하얀 손수건에 뭐야? 라는 눈빛을 보내자 윤석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툭 내뱉는다.
"가죽에 더럽게 눈물, 콧물 묻히지 말고 이걸로 닦아."
"뭐?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제 가죽옷에 눈물, 콧물 묻히지 말라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윤석때문에 잠시 발끈하는 브라이언이지만 이어지는 그의 행동에 악쓰느라 벌린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행동을 멈추었다.
"나때문인거 아니까 그만 울어."
윤석이 제게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부드러운 톤의 목소리와 제가 받지 않은 손수건으로 눈물로 범벅 된 뺨을 쓸어 주는 행동까지. 예상치도 못한 윤석의 행동에 브라이언은 돌이라도 된 양 그저 멍청히 서있었다.
"더 늦으면 오늘 못 잘 거 같으니까 이제 그만 들어가자."
"어?"
몇 번 브라이언의 얼굴을 닦아주던 윤석이 손수건을 제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 바이크의 손잡이를 잡는다.
생각지도 못한 다정함에 멍해있던 브라이언은 다시 저 바이크를 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온통 싫은 내색을 하며 한걸음 물러선다.
그런 브라이언의 반응에 콧방귀 뀌듯 웃어버린 윤석이 바이크에 턱 하니 걸 터 앉으며 말한다.
"절대 60 이상 안밟을께, 앞 바퀴 들지도 않을게, 드리프트 안할께. 됐지?"
"....저....정말?...."
"어."
"그거... 그거.. 갑자기 멈춰서 뒷바퀴 올리는것도..."
"....................................알았어...."
"뭐야? 방금 그 침묵은????? 내가 말 안 하면 할거였지 너!!!!!"
".....아니...뭐..."
"것 봐!!! 방금도 한 턴 쉬고 대답했잖아!!!! 싫어 안타!!! 나 혼자 택시 타고 들어 갈 거야!!!!"
"안 한다니까?"
"거짓말!!!!"
"내가 언제 말 뒤집은적있어? 안 한다면 안 하는 거야."
믿을 수 없다는 제 말에 정색을 하고 대답하는 윤석때문에 조금 움찔하는 브라이언이었다.
"......진짜지"
"자꾸 두 번 말 하게 할래?"
정말 한번 안 한다면 안 하는 윤석인데다 지금 더 따져봐야 분위기만 험악해 진다는 걸 알기에 더 따져 물을 수는 없었지만 혹시나 제가 기억 못하는 곡예가 또 있을까 싶어 쉬이 대답이 나가지 않는 브라이언이었다.
제가 하지 말란 소리를 안 했다고 해버릴 것만 같아서 말이다.
"기다려봐...."
불안한 듯 눈알을 굴리는 브라이언의 부탁에 조금 전의 정색했던 얼굴을 풀고 차분하게 알았다며 기다리는 윤석이었다.
뭐라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윤석때문에 뭔가 억울했던 기분이 조금 풀린 브라이언은 하지 말라는 말 대신 부탁을 하기로했다.
"숙소까지 보통의 평범한 운전으로 가는 거지? 아까처럼 곡예같은거 안하고... 응?"
"그래, 평범하게 60km로 아주 안전운전 하면서 숙소에 갈 거야, 됐냐?"
"...........응......"
"뭐야? 그 텀은? 나 못 믿냐?"
천연덕스럽게 어찌 네가 나를 못 믿을 수가 있냐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며 거만하게 말하는 윤석의 황당한 모습에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어쨌건 제 불면증 치료해 준다고 귀찮은 것도 무릎 쓰고 바이크를 몰아준 윤석이었기에 그냥 바이크 뒷좌석에 올라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브라이언이었다.
"헬맷 쓰고."
"어..."
비록 대답은 없었지만 더 따지지 않고 손잡이에 걸어놓은 하얀 헬맷을 건네주는 윤석이었다.
그리고 받아 든 하얀 핼멧을 동그란 머리에 씌우고 단단히 동여매는 브라이언이었다.
자신이 무사히 숙소의 현관문을 열고 있다는 사실에 브라이언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얀 신발장 위에 자신이 썼던 헬맷을 올려 놓는다.
"하아.... 드디어..."
평소엔 숙소에 도착해봤자 피곤하다, 힘들다 등의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전까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젖어 있어서인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심하게 안심이 되어 버리는 브라이언이었다.
브라이언이 거실에 들어서자 뒤이어 곧 윤석도 들어왔고 잠시 윤석이 들어오는걸 바라보던 브라이언이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머뭇거리는 사이에 윤석이 얼굴도 들지 않고 말한다.
"씻을 생각하지 말고 빨리 방에 들어가라."
"어?"
"네놈 깔끔병 있어서 또 씻고 잔다 어쩐다 그럴 거 아냐, 그런 거 하지 말고 그냥 들어가 자라고."
역시 좋든 싫든 같이 산 기간이 헛은 아니었나 보다.
안 그래도 브라이언은 제 방이 아닌 화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찝찝한 마음에 확답을 주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브라이언이 깔끔하게 줄을 맞춰 벗어놓은 신발을 엉망으로 헤집으며 제 신발을 대충 벗어 놓은 윤석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지, 씻으면 또 잠깨잖아. 그냥 자."
"그래도..."
밖에 나갔다 왔는데 더군다나 오토바이로 달리다 왔는데 몸에 먼지가 없을 리 없었다.
그것을 다 떠안고 그냥 자라는 건 브라이언에게 있어서 강아지가 오줌 싼 이불 위에서 그냥 자라는것과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어쩌면 이 깔끔병이 불면증의 한 원인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어쨌든 이대로 자기에는 너무 찝찝한 브라이언이었다.
그런 브라이언의 생각을 읽은 건지 윤석의 눈섶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려 하자 얼른 손을 내저으며 타협안을 내놓는 브라이언이었다.
"세수만..."
하고 자면 안될까? 라는 말은 완성도 되기 전에 억세게 끌고 가는 윤석의 두터운 손에 막혀 버렸다.
"어엇."
브라이언의 손목을 잡고 억지로 그의 방에 들어선 윤석은 눈앞에 보이는 침대에 브라이언을 던지듯 눕히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이불을 끌어 올려 목까지 덮어 주고 못 일어나게 꾸욱 누른다.
"자."
"................"
그저 단 한마디 '자' 라는 말과 함께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 보기에 브라이언은 마치 저주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알 수 없는 시선을 피해 살짝 고개를 돌리고 곁눈질로 돌아 보자 여전히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기에 브라이언은 장난치다 걸린 아이처럼 어깨를 움찔하며 보란 듯이 두 눈을 꼭 감았다.
어찌나 세게 감았는지 눈가에 지는 주름을 바라본 윤석은 피식 웃어 버리곤 무겁게 이불을 누르던 손을 풀어 상체를 일으킨다.
윤석의 체중이 떠나가는 스프링의 울림에 브라이언이 살짝 눈을 뜨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갈 거야?"
이제 제 방에 가서 자려나 보다 라는 생각에 어쩐지 조금 아쉬워져 나간 말에 윤석이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 철푸덕 주저 앉는다.
"네가 나가래도 안 나가, 너 잠들 때까지 내가 감시할거야."
그렇게 말하곤 약이 들어있는 서랍을 가리킨다.
윤석이 가리킨 서랍을 눈동자만 돌려 본 브라이언이 자신 또한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치... 네가 가져간 게 다 다 뭐..."
왠지 어린애 투정부리 듯한 말투가 나가는 바람에 헙하고 숨을 들이쉰 브라이언은 작게 눈섶을 찡그리며 짐짓 아무렇지 않다는 듯 몸을 뒤척였다.
"내가 알게 뭐야... 아~ 몰라, 몰라, 잠이나 자 벌써 4시야. 나도 졸려."
브라이언의 투덜거림에 윤석이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하더니 앉았던 자리에 그대로 대자로 누워버린다.
약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나가버릴 줄 알았는데 의외의 행동에 브라이언이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바닥에 누워있는 윤석을 본다.
"누워라."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은지 윤석이 눈섶만 부라리며 경고하듯 말하자 브라이언은 얼른 다시 자리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올린다.
"이불도 없이 괜찮아? 네 방에서 가져올까?"
"됐어. 귀찮아."
"춥잖아...."
"안 추워."
"그래도...."
"자라고 했다."
"........................................"
슬슬 짜증이 나는지 억눌린 목소리에 브라이언이 헙하고 입을 다문다.
잠시 침묵을 유지 하다 그래도 맨 바닥에서 자는 건 아닌것같아 다시 입을 여는 브라이언이었다.
"그럼 내 침대에서 같이 잘래?"
"...................................아니... 난 바닥이 편해."
버럭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체념한 듯 한숨 쉬며 말하는 윤석때문에 브라이언이 용기를 얻고 꿍얼거린다.
"뭐야.. 지 방도 침대면서...."
"좀 자라? 아님 한 바퀴 더 돌까?"
"아니!!!!"
기어이 폭발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는 윤석을 보며 브라이언은 얼른 이불 속으로 얼굴을 숨긴다.
얼굴을 숨기긴 했지만 윤석이 노려보는 게 느껴져 일부러 숨소리를 내쉬며 자는 척을 하자 다시 털썩 눕는 소리가 들린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브라이언이 들릴 듯 말듯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Good night... 황..."
".........잘 자라...."
"............"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어쨌는지 딱 맞게 떨어지는 윤석의 good night 인사에 브라이언은 이불 속에서 동그랗게 뜨고 있던 눈을 가만히 감았다.
- 2010/11/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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